사람들은 익숙한 것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상 속 건축 역시 익숙하다는 이유로 인식되지 못한 채 지나치기 쉽다. 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무의식 속에 남은 건축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했다.
건축의 기능적 속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낯설게 하기’를 제안하고, 도시에서 단절된 창신동 절개지를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로 전환한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창신동 절개지는 도시의 살아 있는 기록이자 이면적 장소이며, 현재는 절벽이라는 특수한 오브제로 남아 있다. 역사가 축적된 이 땅의 의미를 되짚고, 과거 도시의 전환점이었던 장소에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채석장에서 비롯된 재료의 구축 논리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단절된 땅에 현재의 것을 덧붙인다. 고착된 땅을 다시 바라보게 함으로써 장소의 의미와 도시의 낯선 풍경을 드러낸다.
창신동은 100년의 시간 동안 존재와 소멸, 변질의 과정이 시각적으로 드러난 장소다. 시간의 흔적에 집중해 보이지 않는 장소의 궤적을 보이는 현상으로 되돌린다.
건축물의 모든 이동은 램프를 통해 이뤄진다. 외부에서 내부로, 수평의 땅에서 수직의 절벽으로 이어지는 이동은 대지와 건축의 경계를 흐리며 서로를 연결한다.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한국에 뿌리를 둔 설계자로서 애정과 존경을 담아 자연스럽게 익혀 온 한국성을 찾는다. 관찰과 실험은 오늘의 한국성을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과정이다.
도시의 배경이 변하면서 주거의 형상도 도시한옥에서 불란서주택, 다가구주택과 아파트, 원룸으로 변해 왔다. 이 주거 유형이 모여 만든 군집의 풍경은 각 시대의 성격을 반영한다.
지금까지 변화한 집의 형상을 한 필지에 모으면 어떤 모습이 될까. 학습하고 경험한 주거의 풍경을 시대의 거울로 삼아 현재의 한국성으로 다시 구성한다.
대상지는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의 경사지에 있다. 정돈되지 않은 길과 남아 있는 집터가 만드는 군집의 풍경에는 삶의 지형학이 축적돼 있다.
석축과 외부계단, 원룸·다가구주택·도시한옥·아파트를 재해석한 네 개의 덩어리를 조합한다. 서로 적절히 떨어진 공간을 직접 걸어 이동하도록 해 반기능적인 구성이 오히려 더 기능적인 삶을 만들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은 오랜 시간 속에서 옛것과 현재의 것이 함께 쌓여 만들어진다. 각 시대를 반영한 한국성이 모여 지금의 풍경을 만들고, 우리는 그 풍경을 기억한다.
경험한 한국성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표현하며 오늘의 한국성을 드러낸다. 전통을 현대의 눈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창조해, 다음 세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산을 만든다.
1960년대 산업시설인 옛 유유산업 안양공장은 문화공간으로 전환돼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보존되고 확장되며 변형되는 김중업의 건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다.
김중업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지 위에 새로운 레이어가 될 도서관을 제안한다. 오늘날 그의 건축 유산이 어떻게 수명을 이어가고 활용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기하학적 단순성을 가지면서 기능에 따라 계속 분화하는 김중업의 건축 언어를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표현한다. 건축을 하나의 유형학적 텍스트로 보고, 독립된 요소를 병치해 새로운 전체를 만든다.
각 요소가 자율성을 갖도록 트러스가 지지하는 대공간 안에 자유로운 볼륨을 배치한다. 공간을 조금씩 엇갈리게 두어 얕은 시선과 깊은 시선이 충돌하도록 하고, 각 기능의 독립적인 동선을 유지한다.
도서관은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리드의 켜와 레이어에 따라 볼륨의 밀도를 조절하고, 기능이 서로 얽히지 않으면서도 시선과 움직임이 교차하도록 구성한다.